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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고향 숲이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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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월(嘉月)의 아침 해가 산마루를 끌어 내리며 안개 속에 잠긴 마을로 다가서면 몇 아름드리 되는 느티나무와 팽나무, 이팝나무 숲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팔을 벌리고 즐겨 봄 햇살을 맞는다. 밝은 아침 해는 나무와 하늘의 경계에서 부서지고 부서진 빛의 파편들은 폭포의 작은 물방울처럼 마을 지붕 위와 와룡동천(臥龍東川)으로 튕겨 내린다. 마을과 개울, 논과 밭 사이로 특별히 구분이 되어있지 않지만 옛 사람들은 지금 숲을 이룬 나무들을 심을 때 원칙이 있었음은 분명하다.

커다란 바위나 땅의 경사를 정리하지 않고 그냥 자연 속에 어울려 살도록 나무들을 심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굵은 나무들은 척박한 땅 속으로 더 이상 뿌리를 깊이 박지 못해 돌 틈 사이로 울퉁불퉁 근육질의 뿌리를 드러낸 것들도 있다. 하늘을 막아서는 가지들은 마치 원시의 수림처럼 여유가 없을 정도로 빽빽해 보이지만 각자의 영역을 지키고 있는 뿌리 쪽으로 내려오면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서로의 삶과 구역을 이해하는 것처럼 간격은 충분하다. 오백년 이상의 시간을 한 곳에 뿌리내리고 서로 부둥켜안고 살았으니 어찌 그러지 않을까.

나무와 나무, 바위와 흙이 어우러진 그 곳에서 아이들은 놀이 속에서 커갔으며, 어른들은 흐르는 계절의 시간들을 보면서 삶의 여유와 기쁨을 누렸고 지나가던 뻥튀기장수, 생멸치차도 이 숲에서 장사를 벌였다. 숲은 말하지 않았지만 계절에 따라 나뭇잎들은 창날 같은 햇살을 은빛으로, 때로는 푸른 삼대처럼 화려하게 펼쳐 갔다. 구름은 숲의 나무 가지들에 걸리지 못했고 품었던 물방울들을 떨어뜨리고 앞산 위로 쫓겨 갔다. 바람도 숲의 나무들을 건드리지 못했고 참을 수 없을 만큼 무더운 여름날은 오히려 나무들이 바람을 불러왔다. 숲은 넉넉했고 조용했다. 아이들 공은 작은 돌들과 흙 사이로 굴러 다녔으며 조그만 여자애들은 고무줄 위에서 나비처럼 폴짝폴짝 뛰었다. 아낙들은 졸리고 반쯤 감긴 눈으로 튼실한 허벅지를 드러낸 채 삼을 삼았고 어린아이는 매미소리 아래서 엄마의 젖무덤을 헤집었다.

화월(花月)의 좋은 날이 오면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선정에 드셨듯이 오래된 고향 숲에 도심의 지친 몸을 씻으러 가보고 싶다. 그 시절의 마음들을 다시 만날 수는 없겠지만 직박구리가 둥지를 틀던 팽나무 꼭대기를 보며 어울려 살았을 때의 행복을 느껴보고 싶다. 서로가 잘났다고 하는 이 혼탁한 세상에 서로 다른 나무들이 한 곳에 뿌리내려 오백여년을 함께한 숲이 주는 교훈은 참으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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