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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전어(錢魚)회가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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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이 쨍쨍 내려쬐는 한낮, 푸르고 하얗게 쩔쩔 끓는 바다는 낮은 물결이 일고 옅은 비린내가 적당히 풍긴다. 오랜 가뭄으로 흙먼지가 쌓인 호박잎들은 지친 듯 축 늘어졌다. 햇살만 가득 찬 포구는 눈을 씻고 봐도 사람구경을 할 수 없을 만큼 텅 비었다.

모처럼 벗을 만나 전어 회 한 점을 놓고 회심곡이라도 부르면서 옛 우정을 추억해보자 찾아든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침에 나간 어부는 오후에 돌아 왔다. 낡고 구멍이 숭숭한 그물에 몇 마리 전어가 매달려 있다.

갯마을 포구에는 뜨거운 햇살에 몇 년 동안 물 구경이라고는 한 적이 없는 꼬질꼬질 털 복숭이 강아지가 영역 표시라도 하는지 킁킁거리며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배고픈 길고양이 새끼는 그물에서 고기를 떼고 있는 어부 마누라 등 뒤에서 연신 눈치를 본다. 바람이 별로 없는데도 뒤척이는 바다는 잔물결을 만들며 주인 없이 매어진 거룻배들을 들쑤신다.

몇 시간 전부터 전어를 기다리며 소주잔을 기울이던 손님은 이미 반 술이나 되어 전어가 언제 올 거냐고 채근을 해댄다. 갯가 아낙은 늙은 어부가 건져온 전어로 회를 준비한다. 전어 회를 모양내 써는 것이 아니라 뭉툭한 칼질로 비늘만 털어내고 숭덩숭덩 잘라 조그만 대나무 채반에 담아 내온다. 막장에 참기름 두어 방울과 매운 고추, 마늘을 적당히 넣어 내놓는다.

사실 전어는 벼가 고개를 숙이고 황금 들판으로 바뀌기 시작하면서 맛이 나기 시작한다. 지금은 다들 어린 전어를 회로 먹지만 지방이 꽉 찬 가을 전어를 구워 먹어야 제대로 고소함을 느낄 수 있다. 전어는 원래 어살 전(箭)자에 물고기 어(魚)자를 써서 전어라고 했다고도 하고, 화살처럼 빠른 고기라는 뜻으로 전어(箭魚)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맑은 바닷물 속을 쏜살같이 헤엄치는 모습으로 보아서는 돈 생선이라는 의미의 전어(錢魚) 보다는 그리 귀하지도 맛이 뛰어나지도 않은 생선을 사람들이 돈 나가는 줄도 모르고 먹는다고 해서 전어라고 한다는 말이 더 실감난다. 삼복더위에 매운 고추를 다져넣은 된장 양념에 채 썰듯이 썬 어린 전어 회를 볼이 미어지도록 한 입 밀어 넣고 고소하고 맵싸한 회 맛을 즐기는 것도 좋다. 백년만의 폭염에 지쳐가는 요즘 맛깔스런 제철 전어 회 한 접시로 오는 가을을 기다려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 수필가 이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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